초보 여행자는 돈 내고 입장하는 곳을 주로 간다. 중급 쯤 되면 돈 안내고 볼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닌다. 여행 고수는 주로 터(址)를 찾아다닌다. 그런 의미에서 익산은 고수에게 맞는 여행지다. 익산은 건물보다는 주로 터가 남아 있다. 익산 하면 생각나는 건 그 옛날 보석 산업이 흥했다는 것과 코미디언 이주일 선생을 유명하게 만든 이리역 폭발사고 그리고 백제의 흔적이다.
왕궁저수지를 걷는다. 고즈녁한 분위기다. 짧은 무장애(無障碍) 길을 만들어 놓았다. 저수지 수문 50미터 위에 지어놓은 정자 함벽정(涵碧亭)이 있다. 글자대로 해석하면 호수의 푸르름을 받아들이는 정자다. 함벽정에 앉으면 왕궁저수지는 물론 주변 경관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봄엔 벚꽃 등의 봄꽃 놀이를 할 수 있다.
1920년에 익산의 부자 송병우가 건립했다고 한다. 바로 옆엔 보석박물관이 있다. 아마도 익산의 보석이 유명했던 것은 익산의 좋은 돌과 싼 노동력 덕분이었을 것 같다. 지금은 사람이 많이 오는 것 같지 않다.
그 건너편엔 익산 포레스트라는 명소가 있다. 서울에서 건설업을 하시던 사장님이 고향에 내려와 개발하고 계신다고 하는데 수목원과 갤러리와 아이들 놀이 공간과 카페와 식당을 두루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수목원엔 동백과 장미와 귤나무 그리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야자나무와 바나나 나무가 있다. 수목원에서 족욕을 하며 익산을 바라보는 재미도 그렇고 덤으로 갤러리를 들려 우아하게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그렇고 식당에서 소고기나 갈비탕을 먹는 것도 그렇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왕궁저수지 주변의 명소를 딱 한군데만 고르라면 난 주저 없이 사은가든이다. 이 식당은 마치 배를 타고 먹는 것 같다. 입구 위에 해불양수(海不讓水)라고 써있는 액자가 손님을 맞는다. 큰 바다는 구정물도 싫어하지 않는다란 뜻 아닌가? 주인장의 마음이다. 난 주로 민물새우매운탕을 먹는다. 별 다섯 개다. 늘 한 그릇 포장해서 가족들과 지인들게 선물한다. 언젠가 어머니께 드렸더니 어머니 왈 이 맛은 전라도 사람만 낼 수 있는 맛이라고 하신다.
사은회관에서 1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왕궁다원(王宮茶園)이 있다. 200년이나 내려온 고택을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익산의 만석꾼 송병우의 집이었다. 고풍스러운 한옥의 멋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왕궁다원 앞에 열녀비(烈女碑)가 서있다. 그런데 열녀비의 주인공은 인생을 잘 산 것일까? 함께 모시고 간 지인들게 만약 최초의 열부비(烈夫碑)가 서면 내가 주인공일거라고 말하니 모두 웃는다.
왕국다원에선 커피 보다는 우리 차(茶)가 어울린다. 조선시대 양반이 된 느낌이다. 아쉬운 것은 토, 일요일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
'스토리마당 > 이성일의 전라도를 걷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걸음의 미학, 전주 건지산 편백나무숲 (0) | 2024.06.04 |
---|---|
전북 완주군, 화산 꽃동산과 작약밭을 걷다 (1) | 2024.05.20 |
유교, 기독교 그리고 천주교, 원불교가 10분 거리에 함께하는 평화 마을, 전주! (1) | 2024.05.06 |
낭만과 추억의 전주 서학동 예술마을 (1) | 2024.04.22 |
BTS가 다녀갔다는 전북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 마을 (3) | 2024.04.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