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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창조/최문섭의나도빌딩주인이될수있다

원룸주택과 생활형 숙박시설

by 이치저널 2021.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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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섭 0112411199@naver.com

 

 

"나도 빌딩주인이 될 수 있다!"

 

 

 

 

나는 30년 전 홍대앞 부동산에서 우연히 일본학생들을 만났다.   "원룸이노 있으모니까?" 부동산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는 학생에게 나는 다시 물어보았다. "원룸이노 어떤집입니까?" 답은 방이 없고, 방 안에 화장실, 싱크대, 세탁기를 다 집어넣고 통으로 된 방이 원룸이라 했다.

그때 마침 주변에 빈 공터가 보이길래  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땅 주인은 수십년 동안  아이디어가 없어 건축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원룸 20개를 만들자고 건축주를 설득했다. 일본돈으로는 3만엔이였고 우리나돈은 30만원이였다. 만약, 건축을 한다면 방 20개는 한달에 6백이라는 거금이 들어오게 된다!

 

 

신촌일대는 대학이 5개나 있어 입주자 20명을 입주 시키는데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건축주는 실패하면 건물을 나보고 책임지라고 했다. 실퍠란 입주자를 모으지 못하면 원래 땅 모습으로 돌려놓겠다 각서를 썼다. 땅은 확보 했는데 공사비가 문제 였다. 강남의 저축은행을 찾아가 10평짜리 원룸 20개를 만들테니 돈을 빌려달라 했다. 담당자가 회장에게 보고해 한번 만나도록 주선을 해주었다. 그때 마침 저축은행은 철근과철사를 만드는 공장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작은 건물이지만 철근을 거래하기로 하고 공사비 전액을 지원받기로 했다. 첫번째 원룸주택이 탄생하는 순간이였다. 신촌일대 학생들에게 소문이 나자, 주변땅들이 똑같은 원룸을 지어달라 줄을 서기 시작했다. 신촌부근은 학생들이 전국에서 올라와 방이 부족한 시기였다. 한달에 6백만 원 수입이 들어오는 원룸주택 20가구는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기 시작했다.

 

 

 

 

어느날 술취한 학생이 방을 잘못들어와 난동이 일어났다. 그날 이후 20개 방 앞을 칼라풀한 칠로 표시하게 되었다. 크레파스 12가지색을 반복하여 원색을 칠하다 보니 '칼라하우스'라는 브랜드가 탄생했다. 학생들 위주였던 '칼라하우스'는 점차 직장인들과 독신자들 사이에서 인기폭발이였다. 나는 원룸주택 모델하우스를 항상 개방 시켜놓고 입주자를 모집하였고, 건축설계에서 부터 시공 임대 관리까지 부동산 개발 토탈서비스로 사업을 시작했다.

인터넷도 없고 컴퓨터도 없던 시절, 일간지 신문들은 내가 개발하는 '자투리땅 뉴스'는 서울 곳곳에 퍼지기 시작했다. 한국경제 신문 부동산 테크라는 코너에 한국예건 최문섭으로 연재하기 시작 했다. 그때 나의 별명은"자투리 땅"이였고, 브랜드는 칼라하우스 원룸 주택이였다.

 

 

 

신촌에서 10군데를 출발하여 서울 시내 170곳 2천 가구를 넘겼다. 날마다 일간지 신문에 한쪽 모퉁이에  한국예건 최문섭이 하는 일이 실렸다. 그리고 방송국에서 드디어 연락이 왔다. 건축을 하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로 인터뷰를 했는데 "건축은 엄마가 아기를 낳는 것과 같다. 아기를 낳아봐야 알수 있듯, 건축도 집을 짓기 전 건축모형을 미리 만들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한마디 말이 저녁 뉴스에 나가자, 그 다음날 사무실엔 평소에 10배의 일이 들어왔다.  방송의 힘이 너무 커 놀랐다. 그뒤로 방송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드디어 매일경제에서 케이블 방송국이 개국하고, 나는 운 좋게도 첫번째 방송코너를 맡게 되었다. 나의 '건축가의 길'과 '자투리땅 개발 사례'가 방송에서도 홍보가 됐다. 프로그램은 '부동산 전망대'였고 '알짜가 보인다! 부동산 뉴스 ' 닥치는 대로 방송에 적응하면서 회사를 홍보했다. 매일경제 NBN에서 고정 6년을 방송했다.

나는 홍보도 해야하고, 영업도하면서, 앞서가는 사장이 되어야 했다. 직원 80명을 거느리고 사업은 수십년간 지속됐다. 그 결과 건축가 최문섭은 한국경제의 연재했던 시리즈를 모아 "임대주택을 잡아라" 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저자 최문섭, 출판사- 한국경제 신문사> 그 이후 기자들은 나의 별명을 '원룸의 아버지'라 불렀다.

 

 

 

현재 싱글족이 30%라 한다. 도시형 생활 주택, 오피스텔, 다가구주택, 모두는 원룸주택의 기본이다. 늘 시대를 앞서가는 건축을 하려 노력했지만, 우연히 만났던 일본학생들의 입에서 내 인생의 원룸주택 직업이 수십년가 존재했다.

어느날 기자들이 "소장님 ! 다음은 뭐 하실 거에요?"란 질문을 던졌을 때, 난 " 원룸 주택을 산으로 들로 바다로 퍼나를 것입니다." 라 말했다. 그것이 현재 생활형 숙박 시설이다. 일명 '생숙'이다 . 새로운 원룸주택의 생숙은 대한민국 상업지 도시와 삼면바다 뷰로 2021년 12월 현재 폭발적으로 연간 1000%씩 성장하고 있다.

뉴스에서 아파트값이 폭등했다고 난리다. 그러나 원룸의 원조인 생숙은 한국경제의 빼놓을 수 없는 상품으로 오늘도 뜨고 있다. 최근에 호텔로 이름 붙혀진 호텔은 생활형 숙박시설이다. 외형 이름만 호텔로 불리우고 있다.

또 다시 선거가 시작 되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부동산 폭등을 잡으려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정책이다. 부동산이 오르는 이유는 땅값이 오르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땅은 상업용지 땅이다. 기존 땅과 10배 이상가치 있는 상업용지는 전국적으로 투자가치 1등이다.

30년 전 개발한 원룸주택이 아직도 재테크에는 이름만 달랐지 일등으로 달리고 있다. 다음 정권에선 실수요 가치가 있는 원룸 빼고는 부동산 거품이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 해운대를 시작으로 포항, 삼척, 강릉, 속초, 양양, 고성, 동해안 생활형 숙박시설은 신축 공사로 활발하다. 2022년에도 원룸 원조는 더욱더 뿌리를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도시에선 상업지구, 바닷가엔 뷰를 바라다 보는 호텔로 살아남을 것이다.

 

 

나는 2022년에도 원룸의 아버지 자리를 지킬 것이다. 나는 어디가든 자신있게 이야기 한다. "임대주택이란 책을 썼구요, 원룸주택은 제가 만든 말이에요! 앞으로도 임대주택은 아파트 분야에서 재테크 1위가 될 것이며, 돈을 벌면 동해안 어딘가에 원룸 집과 사무실을 겸하며 사는 분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부동산은 돈보다 이용의 가치를 즐길 줄 아는 것이 성공한 삶입니다!"

원룸주택이 많이 생기더라도 뷰가 좋고, 공기 좋은 곳은 경쟁자가 없을 것이다.     

결국 사람은 좋은 집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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