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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송란교의 행복사냥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면 돈이 들어온다

by 이치저널 2024.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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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금수(禽獸)와 다른 것은 말속에 인격이 있는 까닭이라고 한다. 한자로 말씀 어(語)는 말씀 언(言) + 나 오(吾)를 합한 글자로 ‘말로써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니, 말이 곧 자신의 인격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격(人格)은 사람으로서의 품격이라 할 수 있으며, 사람이 사람으로서 가지는 품격이나 됨됨이를 ‘인품(人品)’이라 한다.

저울이나 시소는 어느 한쪽이 무거우면 밑으로 내려가고 다른 한쪽은 위로 올라가게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말은 이와는 다르다. 다른 사람을 높이면 나에 대한 평가도 그만큼 올라간다. 그러나 나를 높이 평가하면 그만큼 올라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리면 나에 대한 평가도 거칠게 낮아진다. 그러니 상대방으로부터 대접받고 싶으면 대접하는 말을 하면 되는 것이고, 인정받고 싶으면 인정하는 말을 하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높인다고 불쑥 튀어나온 배를 보고 ‘배님’이라 하고, 넘나드는 문턱에 길쭉하게 뻗고 있는 다리를 보고 ‘족님’이라 부른다면 참으로 우스꽝스러울 것이다.

말은 참으로 묘하다. ‘그는 잘 한다’ ‘그가 잘 한다’ ‘그도 잘 한다’ 이 말들에서의 차이는 ‘는, 가, 도’의 토씨들이지만, 이 말들의 뜻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이 있게 된 것이다. 시의적절한 말, 격에 맞는 말은 언제나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예기(禮記)》<곡례 상(曲禮 上)>에 자비존인(自卑尊人)이라는 말이 있다. ‘인유례즉안 무례즉위, 고왈 예자불가불학야. 부례자 자비이존인, 수부판자 필유존야, 이황부귀호(人有禮則安 無禮則危, 故曰 禮者不可不學也. 夫禮者 自卑而尊人, 雖負販者 必有尊也, 而況富貴乎 : 사람이 예가 있으면 편안하고 예가 없으면 위태하니, 그런 까닭에 예라는 것을 배우지 않을 수 없다. 예라는 것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이며, 비록 노동자나 상인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존경함이 있어야 하는데 하물며 부귀한 사람에게 있어서랴)’라고 하였다. 곧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이 예의 근본임을 강조한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뀐다 해도 예절의 기본정신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고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다 보면, 서로 마음이 상하게 되고 서로 거친 말을 주고받게 된다. 나중엔 주먹다짐까지 오고 가게 된다. 예의 기본정신은 마음과 행동을 통해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이는 것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벼가 익는다’는 말은 사람의 인격이나 지식의 정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뜻한다고 할 것이다.

입속의 말은 생각에 불과 하지만 밖으로 나오면 자신이 다스릴 수가 없다. 그러나 듣는 사람에게는 향기가 되기도 하고 흉기가 되기도 한다. 품위 있는 말, 품격 있는 말은 내면에서 나온다. 평소 말을 아끼고 아름답게 쓴다면 내면도 아름다워질 것이다. 막말로 품격을 허문다면 평생 쌓아 올린 인격도 함께 무너질 수 있다. 존중하는 마음은 배려에서 비롯된다. 품격의 완성은 나를 존중하는 마음,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말을 높이는 말로 바꾸어 보자. 사소하지만 성과를 낸 사람에게 ‘겨우 그것밖에 못 했군요’보다는 ‘노력하더니 큰일을 해냈군요’와 같이 상대를 높이고 인정 해주는 말을 하면 자기 자신의 마음도 순해지고 편해질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낮추는 말보다 다른 사람을 높이는 말을 더 많이 하면 좋겠다. 자신을 낮추는 말은 내 기분을 가라앉게 하나 다른 사람을 높이는 말은 내 기분을 더 좋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높이고 칭찬함으로써 상대와 나를 동시에 높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해 주는 말은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한껏 기분이 좋아진다. 상대가 기분 좋아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저절로 웃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문제는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은 ‘아리가도고자이마스(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고맙습니다)’와 ‘스미마셍(すみません, 미안합니다)’이다. 일본 사람들은 ‘아리가도고자이마스’보다 ‘스미마셍’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쓴다고 한다. ‘스미마셍’은 단순히 미안하다는 말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먼저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또한 일본 사람들은 ‘나를 낮추고 남을 높여야 돈이 들어온다’는 생각이 몸에 배어 있다고 한다. 실제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면 돈이 들어온다’라고 하면 우리도 다른 사람에 대하여 높임말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이 계기가 되어 자신의 운명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남을 대접하고 높일 줄 아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귀한 대접을 받게 된다.

 

말과 인격은 뗄 수 없는 동반자 관계임을 알고 말 한마디도 조심성 있게 하자.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가정, 직장, 학교, 사회에서 하루에도 수많은 말들이 오고 간다. 그중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말도 있을 수 있지만,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말도 있을 것이다. 기분 좋게 말한 사람은 더 많은 존경을 받을 것이고, 상처를 준 사람은 두고두고 더 나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친구와 동료,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 가족으로부터 존경받고 사랑받으려면 말 한마디라도 사려 깊게 판단해서 신중하게 해야 한다. ‘삼사일언(三思一言)’ 하라는 말을 기억하자.

 

똑같은 내용도 되도록 긍정적인 표현으로, 부드러운 표현으로, 배려하는 표현으로 바꾸어 보자.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안 됩니다’ → ‘이렇게 해결하는 방법도 있을 듯 합니다’, ‘~~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합시다’, ‘그건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그 건에 대해 빨리 정리하도록 합시다’, ‘그래 말해봐’ → ‘말씀해주세요’ 또는 ‘가르쳐 주세요’, ‘왜 그러시죠? 무슨 일인데요?’ → ‘네. ~~일 말씀입니까?’라고 하는 것이 훨씬 더 공손하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말이 된다. 상대가 준 자료나 정보가 별로여도 ‘덕분에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라는 한마디로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 실력을 갖춘 사람에게 질문이나 의견을 제시할 땐 ‘잘 모르겠습니다만’으로 시작하고, 화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고 느껴질 때는 ‘잘 아시는 바와 같이’라고 하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세워줄 필요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말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한다. 사람과 사람을 맺어주는 일차적인 끈도 역시 말이다. 사람은 말을 통해 자신의 품위를 드러내고 다른 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나의 말은 ‘나’라는 육체가 만들어낸 생산물이다. 그러니 재고 조사를 통해 그것이 명품인지 싸구려인지 항상 점검해봐야 한다. 말(言)에는 수준이 있다. 비싸게 먹는 소고기에만 등급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나의 인품(人品)의 높낮이가 정해진다. 지혜로운 혀는 세상을 선하게 하고, 어리석은 혀는 제 몸을 베는 법이다. 남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을 잘 들으라는 말도 있다. 9㎝밖에 안 되는 혀가 90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을 생각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왈. 유덕자필유언, 유언자불필유덕. 인자필유용, 용자불필유인(子曰. 有德者必有言, 有言者不必有德. 仁者必有勇, 勇者不必有仁 :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들을 만한 말을 하지만, 말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진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있지만, 용맹스럽다 하여 반드시 어진 사람은 아니다)’. 공자의 말씀처럼 덕이 있는 사람은 덕이 있는 말을 한다는 것이다. ‘말로 먹고사는 시대’라 한다. 남을 비방하거나 험담하기보다는 좋은 말과 칭찬을 많이 하다 보면 절로 덕이 쌓일 것이고,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잘해서 큰 상을 받았다면, ‘내가 너 보다 잘했다’라는 생각보다는 ‘상대가 나를 위해 양보를 해주었다’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다음에는 당신도 그 상을 꼭 받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 상을 받으시도록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용기가 있으면 좋겠다.

 

아파서 울고 있는 사람에게 어디가 아프냐고 묻지도 않고, 얼마나 아프냐고 묻지도 않고, ‘내가 아파봐서 아는데 그거 아픈 것이 아니야, 그것은 꾀병이야’하고 쿡 찌른다면, 정말로 아픈 사람은 마음 까지 더 아파서 미움의 칼날이 그만큼 더 날카로워진다. 자신이 아팠을 때의 그 아픔을 떠올리고 그것보다는 훨씬 더 많이 아프겠지 하면서 빨리 나으라는 위로의 말을 해준다면, 상대와 내가 설령 적대적인 관계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화해가 있고 신뢰가 생길 것이다. 그래야 관계가 더 넓어지고 믿음도 더 깊어지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 아닌 소리는 귀에만 들어갈 뿐 마음으로 스며들지 않는다. 소음 같은 소리는 귀를 찌를 뿐이다. 찔리면 아프기에 찡그리게 되고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게 된다. 그러므로 소리가 아닌 말을 해야 한다.

언어는 생각이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한 음성, 문자, 몸짓 등을 아우른다. 사람의 인품을 볼 때는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기도 하지만 말에도 귀 기울인다. 말하는 태도나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으로 그 사람의 품격을 판단하려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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