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촬영 : 이미현 사진작가
붉디붉은 그리움이 봄바람을 타고 물든다. 바다와 동백이 맞닿은 그곳, 여수 오동도에서는 계절이 시작도 하기 전부터 이미 봄이 짙게 피어나 있다. 동백이 뚝뚝 눈물처럼 떨어지는 길 위에서, 사람들은 그저 걸을 뿐인데도 마음이 채워진다. 바람결에 실린 꽃잎 하나에도 오래된 기억이 살아나고, 파도 소리에 실려온 향기에 낯선 위로가 밀려든다.
여수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오동도. 본래는 육지와 떨어져 있었지만, 1935년 방파제가 생기면서 이제는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섬이 됐다. 이름 그대로 오동나무 잎처럼 생겼다 하여 오동도라 불렸고, 예로부터 ‘여수 8경’ 중 하나로 꼽힐 만큼 경관이 아름답다. 하지만 지금의 오동도를 있게 한 건 단연 동백이다. 섬 전체가 동백나무 천국이다. 동백이 없는 오동도는 단풍 없는 내장산처럼, 벚꽃 없는 진해처럼 허전할 것이다.


겨울부터 봄까지, 오동도는 꽃에 물든다. 동백은 붉게 피었다가 붉게 스러진다. 한 송이 꽃이 그대로 뚝 떨어진다. 그 모양이 왠지 사람 마음을 닮았다. 땅에 떨어진 동백 한 송이에도 시선이 머무는 이유다. 여수 시민들에게 오동도 동백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기억이고 위로다. 누구나 한 번쯤 이 섬에서 마음을 눌러봤고, 흘러넘치는 그리움을 품었을 것이다.


오동도의 동백길은 총 2.5km 정도의 순환형 산책로로 되어 있다. 길 자체는 완만하지만 숲이 깊어 걷는 내내 울창한 동백군락이 길동무가 되어준다. 사진 찍기 좋은 장소로는 등대전망대가 첫손에 꼽힌다. 오동도 등대는 1952년에 세워졌고, 등대에 오르면 여수 앞바다와 멀리 남해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해 질 녘 풍경은 말할 것도 없이 아름답고, 섬 전체가 붉은 하늘빛에 잠기면 동백도 저마다 붉음을 더한다.


동백굴림길 역시 사진 명소다. 굴곡진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 그 사이를 걷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한 장의 엽서처럼 인상적이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는 떨어진 동백꽃이 오솔길을 붉게 물들인다. 인공이 아닌 자연의 연출이라는 점에서, 그 모든 장면이 특별하다.

오동도는 꽃만 보기엔 아까운 곳이다.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파도소리를 품은 용굴, 바다 위를 걷는 듯한 해상보도, 섬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지는 해안절벽도 눈길을 끈다. 섬 구석구석을 천천히 돌아보면 그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다. 고요한 듯 요란하고, 붉은 듯 투명한 색감이 이어지는 오동도의 하루는 늘 다채롭다.


배고프면 또 여수가 기다린다. 오동도 인근에는 여수 특유의 해산물 요리가 풍성하다. 갓김치에 곁들인 서대회무침, 통통하게 오른 돌문어숙회, 바다내음 가득한 해물짬뽕과 장어탕, 삼치구이까지. 관광객의 입맛을 사로잡는 음식점이 즐비하다. 날이 따뜻해지면 야외 테이블에서 바다를 보며 먹는 재미가 따로 있다.
오동도에는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꽃이 피고 지는 속도도, 바다가 넘실대는 박자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느리다. 그러나 그 느림이 귀하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길 위에 발을 얹는 순간,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는 장면이 차곡차곡 쌓인다.

꽃은 지기 위해 피지만, 그 지는 모습조차 찬란한 법이다. 오동도는 그걸 말없이 가르쳐주는 섬이다. 오늘, 동백이 피는 오동도로 떠나라. 그리움이 꽃으로 피어나는 곳에서, 내 마음의 계절을 다시 써보는 여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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