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연doyeonlee3@navet.com
새벽의 찬 공기 속을 가르며 질주하는 차량의 불빛은 유성처럼 긴 여운의 꼬리를 물고 졸음에 겨운 시야를 스치다 사라진다.
계집아이의 수줍어 발그레한 볼연지 닮은 새봄이 꽃바람 나풀거리는 치마폭 바람이 따라 오기도 전에 성급한 마음에 다가오는 봄을 찾아 섬진강 물결 따라 달려간다.
진메 마을 당산나무는 강물 끝까지 닿아 있는 커다란 그림자로 나그네를 반기고 김용택 섬진강 시인의 마을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우며 시인의 음성은 낮고 소박했다.
섬진강의 봄은 상상으로 다가와 이미 아련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가슴처럼 부드럽다.
진안고원 팔공산 자락의 옥녀봉 아래 데미샘의 깊고 맑은 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옥녀의 섬섬옥수 여린 처녀의 손끝처럼 흐르는 물결은 섬세하고 처연하며 따스하고 잔잔하다.
강은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수줍은 듯 없는 듯 속살을 비추며 한 뼘 한 뼘 강의 줄기를 이어 간다.
섬진강은 이름만 들어도 슬프고 슬퍼서 정감이 가고 정감이 가서 슬프다.
섬진강 500리길 끊어질 듯 이어지고 굽이쳐 돌아 흐르다 멈추어 돌아들어 강가의 마을들을 적시며 소박하고 고요하게 나그네의 가슴 깊이까지 젖어 든다.
강은 요란하지 않으며 범람으로 소란스럽지 않아 정적이고 흐름으로 동적이다.
맑은 물결을 애써 눈에 담아 보려 바라보지 않아도 눈 안에 가득 차게 흐르고 흐르는 물결을 손안에 잡으려 하지 않아도 이미 저만치 봄을 실어 넘실넘실 춤추며 달아나고 있다.
마음을 사랑으로 채우는 천담마을 울타리 앞을 흐르는 물길이 멈추고 이르는 곳마다 봄의 꽃을 피워내고 버들강아지 하늘하늘 강가에 머리 풀어 연두색 봄바람에 몸을 실 는다.
홍매화 향기 가득한 구담마을 징검다리 돌아누워 찰랑대는 새파란 강은 생명의 물길로 땅을 적시어 아름다운 누이의 강이 되고 어머니의 강이 되어 세월 저편으로 말없이 흐른다.
과실이 탐스럽게 열려 임실이라는 마을과 메콤 달콤한 고추장의 고향 순창과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섬진강 다리 위의 파란색 한 줄로 경계를 구획했고 나그네는 경계를 넘어 길을 재촉 한다.
남도의 바람을 타고 오르는 봄의 기운은 생기 가득 머금어 꽃망울을 터트리며 귀주마을 모퉁이 닿아있고 땅은 강 위에 꽃을 피워내고 강은 땅 위에 번성하며 남도의 진군은 섬진강 굽이돌아 500리 물길을 거슬러 지리산 골짜기와 잔설이 녹아내리는 계곡의 겨울을 넘는다.
섬진강을 바라보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우수에 찬 사슴의 눈망울을 닮아간다.
강가에 홀로 서서 물길을 바라보면 머리는 맑아지고 마음은 평화롭다.
들녘은 바람과 햇빛아래 충만해지고 흙과 나무는 강으로 완성되어 실연기 피어나는 촌락은 풍요로 행복해진다.
섬진강은 산을 돌아들고 들을 가로질러 어느 틈엔가 맑은 눈망울 움트는 매화나무 아래 다가와 멈추다 흐르다 길게 물길을 내어 또다시 갈 길이 바쁘다.
시인은 바람과 흙과 나무로 시를 일구어내고 섬진강 자락에 깃들어 오늘도 아득한 단잠 같은 꿈을 꾸며 옹알이하듯 노래를 하고 나그네는 강물 위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 따라 오늘도 물위를 걷는다.
아름다운 섬진강을 그리워하며!
물은 거스르지 않으며 흐름을 주저하지 않으며 부딪치면 돌아들고 유유히 자기만의 길을 내어 하천이 되고 강이 되어 바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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