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말없이 모든 것을 수용하고 언제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출렁인다
우울할 때, 행복할 때, 즐거울 때, 마음의 거울 같은 얼굴로 바다는 사람을 반긴다
검푸른 원양의 바다를 질주하던 바람은 장호항 해변의 백사장으로 스며들었고 항구에 정박한 어선의 깃발을 스쳐 지나간 바람은 내륙의 산등성이를 넘어 대관령 푸른 산맥이나 미시령의 계곡 속에서 소멸했다.
철시한 항구는 침묵하는 얼굴로 고요하고 썰렁했으며 빨간 등대를 머리처럼 받치고 있는 방파제 넘어 바다는 소용돌이치는 무한의 에너지를 해수면 아래 깊이 간직한 채 잔잔한 물결로 일렁이고 있다.
항구에 모여 있는 어선들은 모두 등대의 품안에 자식들이다. 등대의 신호에 따라서 오가는 등대의 자식들인 고기잡이배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항구에 숨을 죽이고 밤바다로 출항하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다. 어선들 사이를 기웃거리며 날고 있는 갈매기들은 한가로이 끼룩거리며 수다를 떤다.
비릿한 포구 풍경은 장호항 앞바다에서 요즘 잡히는 가자미의 짠 냄새와 비린내를 함께 품어 바람에 실어 왔다.
항구 주변에 널려 있는 그물과 어구들이 서로 엉켜 쌓여 있는 것이 바다의 노역과 고됨을 보여주는 일상의 풍경으로 구멍 난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의 아낙 모습도 그물에 걸려 있는 물고기의 모습처럼 느릿하고 어망 속에 어부의 삶도 그물과 함께 얼기설기 엉켜 있거나 때로는 촘촘하게 결박당해 바다 밑에 침묵하며 기어가는 갑각류의 껍질을 닮았다.
동해의 새파란 물속은 거울처럼 햇살을 튕겨내며 해안선 넘어 파란바다 위에 떠 있는 무인도나 암초들의 틈새마다 힘겹게 자리를 잡은 나무와 풀들이 생육되어 삶을 이루고 있다.
고집스럽게 작은 몸을 바위틈에 밀어 넣고 해풍에 몸을 맡긴 소나무는 바다의 짠 소금을 밀어내고 바람에 날려 온 육지의 흙 한 줌에 의지해 자양분을 빨아올리며 인고의 세월을 버티고 있다.
힘겨워 휘어지고 갈라진 나무의 세월 위에는 바닷새들의 둥지가 되고 쉼터가 되었다. 햇살이 바다 위에 낮게 투영되면 바다는 생선의 비늘처럼 반짝이고 나무는 검은 그림자를 만들어 바다와 무인도 암초는 하나가되어 고요한 어촌 풍경과 어울려 아름다운 수묵화의 세계로 연출을 시도한다.
동해의 바다에는 노을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알 수 없다. 해 저무는 저녁바다 항구의 고즈넉한 불빛이 하나 둘씩 깜빡이며 점화를 한다. 검은 바다로 빨간 아기 등대도 점멸을 시작하고 배들은 길게 하얀 물결을 늘이며 소리 없이 포구를 빠져나간다.
밤바다 위의 수평선과 하늘의 경계는 서로 포개어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바다에도 하늘에도 배가 있고 별이 있어 배는 고기를 잡고 별들도 그들만의 대화로 반짝이며 서로가 대화하며 노닌다. 하늘을 선회하며 나르는 새들도 바다와 하늘을 오고가며 경계를 허문다.
바다 저 끝에 점점이 자리를 잡은 배들은 일제히 하얀 집어등을 밝혀 오징어 떼를 부르고 화려한 불빛의 유혹을 시작하면 장호항 어부들의 꿈도 환하게 밝아 간다. 어부의 이마에 흐르는 구슬땀이 개밥바라기(금성) 되어 반짝반짝 바다 위로 떨어지고 바다와 하늘은 불야성의 수평선을 이루어 환하게 빛을 뿜어가며 밤바다의 꿈을 쫒는다.
장호항 방파제 위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빨간 아기등대는 아스라이 수면 위에 걸쳐있는 자식들 걱정에 언제든 포구의 쉼터로 돌아오라고 위안과 희망의 신호를 끝없이 보내며 깜빡인다.
어스름한 새벽녘이나 돌아올 어선을 바라보며 장호항의 바다는 동해의 나폴리를 꿈꾸며 서서히 잠들어 간다.
바다는 말없이 모든 것을 수용하고 언제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출렁인다. 우울할 때, 행복할 때, 즐거울 때, 마음의 거울 같은 얼굴로 바다는 사람을 반긴다.
바다는 여행을 떠나온 사람에게는 낭만과 밤바다의 정취를 선물하지만, 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는 어부들은 갯고랑처럼 깊은 주름과 소금기 가득한 구릿빛 얼굴로 변함없는 우직함으로 바다를 지키며 오늘도 어제처럼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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