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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이도연의 시선 따라 떠나는 사계

서해 바다에 세월을 묻다

by 이치저널 2021.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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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도연 doyeonlee3@navet.com

 

 

표독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의 주름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웃는 얼굴과 인자하게 살아온 사람의 주름은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썰물에 밀려 텅 비어버린 서쪽 바다는 길고 아득하게 갯벌이 펼쳐져 있다. 바다를 밀어내 버린 갯벌 위로 수많은 생명의 숨구멍이 뚫려 있다.

갯지렁이 스멀대는 구멍이 있고, 수 없는 구멍들 주변에는 게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잘 훈련된 병정 같다.

갯벌 위 게들의 움직임은 처연하고 자유롭다. 이방인의 발소리가 그들을 위협하기 전까지는 한가로이 갯벌 위를 유유자적하는 포식자로 군림한다. 무심코 걸음을 옮기던 발걸음 앞에 놀란 그들의 평화는 순식간에 저들만의 약속된 구멍으로 쏜살같이 사라진다.

서해의 강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갯벌 위의 철새들은 갯벌과 모래와 바닷물을 휘적셔 삼키고 걸러내며, 또 다른 생명의 도래지를 위한 날갯짓으로 힘을 비축하기 위해 그곳의 유기물들을 삼키며 갯벌에서 힘을 길러 수평선에 궤적을 그리며 바다를 영유한다.

 

이미지 제공 - 박미애 사진가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다 바다가 저 멀리 달아나 버린 벌 위에 오 갈데없이 갯벌을 파고들다 지쳐 얕은 모래에 묻혀있는 동죽이나 바지락을 만난다.

밀물로 빠져나간 갯고랑 위의 남아 있는 물길에 기대여 숨 쉬고 있는 바다의 생명이 아직은 풍요롭다. 조개의 거칠한 표면에는 바다와 함께한 세월을 보낸 시간의 기록을 살아서나 죽어서나 간직하고 있다.

사람이 달력을 넘기며 연륜이라는 세월을 살아갈 때 조개는 밀물과 썰물들의 자연현상으로 수없이 일어나는 물결의 파동을 자신의 몸 위에 봄과 겨울의 흔적으로 나이테처럼 쌓아간다. 바다에서 몰아치는 파도가 추위와 함께 거칠어지면 갯벌 위를 뒹구는 조개의 등 위에 쓰일 세월의 나이테는 조밀하고 차갑다.

여름의 바다에 뜨거운 불볕더위가 내리쪼이는 갯벌 위를 썰물과 밀물에 여유롭게 밀려가는 조개의 나이테는 여유롭고 한가하다. 성글하게 새겨 넣은 여름의 나이테나 조밀하고 촘촘한 파도의 물결을 간직하고 있는 겨울의 나이테가 조개의 껍데기 위에 생의 기록처럼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서해의 언덕 넘어 숲속의 바람이 차고 겨울의 세찬 바람이 나무의 등걸 위로 몰아칠 때 나무의 나이테는 척박하고 촘촘하고 비루한 간격을 형성한다. 여름의 따사로운 훈풍의 힘으로 풍요롭고 향기 가득한 햇살을 간직한 나무의 나이테는 여유롭고 성글 성글 하다.

사람의 얼굴에도 저마다의 삶이 굴곡진 나이테가 있다. 사람의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으로 풍화하고 변화하며 희로애락의 주름이 늘어가기 마련이다. 표독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의 얼굴에 얼룩진 주름은 거칠고 투박하여 보기 싫지만 웃는 얼굴과 인자하게 살아온 사람의 얼굴에 흐르는 주름은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조개껍데기에 새겨진 줄무늬나 나무에 그려진 나이테나 사람의 얼굴에 새겨진 삶의 흔적인 주름은 모두 공통점을 이룬다. 조개는 썰물과 밀물의 거친 물결의 파동이 남아 있고 혹독한 겨울의 추위와 한여름의 더위를 나무에 가두어 나이테를 만들 듯이 사람의 인생에도 희망과 절망의 세월 풍파를 고스란히 간직한 주름이라는 훈장이 있다.

지금도 끊임없이 나이테를 생성하고 줄무늬를 그어가듯 사람의 인생도 세월의 징표를 남기며 서서히 노화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보기 좋고 결이 아름다운 나이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 여유로움의 철학을 가지고 의식 있는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도 내 인생의 한 줄 나이테가 어떻게 새겨져 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만의 노력으로 동그랗고 예쁜 나이테가 만들어지길 바라며 새로운 아침에 하루라는 눈을 뜬다.

오늘도 새해라는 시간 앞에 자줏빛 석양 노을에 물들 듯 서서히 사위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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