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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송란교의 행복사냥66

커피는 쓴맛, 설탕은 단맛 해가 바뀌고 새해가 시작되면 여기저기 새해맞이 축하 모임이 많아진다. 만나야 하는 사람도 다양해지고 안부를 묻는 일도 많아진다. 정이 그리워 즐거운 마음으로 모임을 주선하는 사람과 돈이 없다고 시간이 없다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모임 참석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시기이다. 일 년 내내 전화 한 통 없고 안부도 물어오지 않아 기억에서 사라지려는 소중한 친구들이 어찌 보고 싶지 않으랴? 그런 친구를 만나면 대충대충 싸구려 안부를 묻기보다는 항상 따뜻한 안부를 물어주는 친구인 것처럼 다정다감한 고급스러운 안부를 물어보자. 결이 다르고 격이 다르고 질이 다르고 속이 다르지만 ‘잘 지내고 있지?’, ‘왠지 얼굴이 좋아 보인다.’라는 간단하지만 야무진 들어서 기분 좋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안부.. 2023. 11. 23.
꼴찌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어떠한 형태로든지 시험을 치지 않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의 평가를 피할 수 없다. 평가자이면서 평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독불장군(獨不將軍)이 아니기에 언제나 등급과 순위가 매겨진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1등을 하든 꼴찌를 하든 순위는 정해진다. 순위는 숫자로만 표시되는 것이 아니다. 매우 잘함과 매우 못함이라는 것도 순위를 매긴 것의 일종이다. 다른 사람을 보는 순간 경쟁자가 아니지만 그 상대방에 대하여 평가를 하게 된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호감이 가는 사람과 비 호감인 사람 등등. 1등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많은 사람으로부터 질투의 대상이 되기 쉽다. 왜냐하면 내가 차지해야 하는 1등을 그 사람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 2023. 11. 16.
먹는 나이를 조금씩 덜어내면 누가 더 가져갈까? 엄마는 아이에게 양껏 먹이고 싶어 밥을 고봉으로 담는다. 아이는 밥이 많다고 투덜거리며 좀처럼 숟가락을 들지 않는다. 엄마와 아이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식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한 숟갈 덜 담으면 아이는 웃으면서 기분 좋게 더 먹을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엄마의 마음은 늘 바쁘다. 한창 클 나이의 아이들은 항상 밥이 부족하다. 식당에서 밥을 더 달라고 하기에 미안하다. 식당 주인이 이문 덜 챙기고 알아서 한 숟갈 더 담아주면 그들은 더 배부르게 먹을 것이다. 이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덜어내면 남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 넘쳐서 불편했던 자신의 걱정을 훌훌 털어내면 속 시원한 웃음이 따라오고 쪼들려서 걱정했던 자신의 배고픔을 뚝딱 채우면 배부른 미소가 따라온다. 밥을 덜어내야.. 2023. 11. 9.
농민은 팔 것이 없고, 상인은 팔릴 것이 없고, 서민은 살 것이 없다 주변을 둘러보면 코스모스나 들국화가 가을바람에 살랑대고 쉬어가는 조각구름도 싱글벙글 상쾌함을 보태고 있다. 길게 드러눕는 석양의 포근함처럼 자연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선물을 나누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넘치는 탐욕도 부족하다고 외친다. 보고 싶지 않은 흠을 있는 대로 들쑤셔서 덕석 위에 고추 말리듯 펼치고 있다. 듣고 싶지 않은 흉을 확성기를 틀어 놓고 온 동네 방네 떠벌리고 다닌다. 법대로 힘대로 하는 완력(腕力)이 언제부터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는지 알 수 없지만 요즘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대세가 된 듯하다. 반면 부드러움은 사라지고 절제는 외면되고 있다. 염치는 없어지고 올바름은 무시되고 있다. 정보의 객관성과 상관없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2023. 11. 2.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명품, ‘나’라는 상품 반듯한 내 이름으로 주식회사 만들어서 나도 대표이사 한번 해보고 싶다. 시키는 대로 마지못해 눈치 보며 일만 하다 불만 가득 얇실한 월급봉투를 받는 종업원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혼을 쏟아붓고, 즐거운 마음으로 넉넉하게 월급을 주는 존경 받는 사장 한번 해보고 싶다. 제품을 만들었는데 상품으로 제대로 팔리지 않고 추진하고 있는 일도 성과가 미지근한데 월급 줄 날이 너무 빨리 돌아온다고 불평하는 사장님도 있지만, 통장의 잔고(殘高)가 간당간당 비어가서 마음이 쪼들리고 보타지는데 급여 날이 너무 더디게 온다고 투덜대는 근로자보다야 더 낫지 않겠는가. 종업원이 한 명이면 어때, 그래도 사장 한번 해보고 싶다. 남들이 불러주면 로봇처럼 받아쓰고 고치고 확인받는 것이 아닌 내 생각을 말하고 나의 구상대로 .. 2023. 10. 26.
자꾸 털어내면 그 먼지를 누가 먼저 마시는가? 그 누구한테도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 누군가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으면 절대 참기 힘들고 분노에 휩싸여 몹시 괴로워하게 된다. 비난받은 사람은 자기가 당한 것을 잊지 않고 꼭 되갚아 주고 싶어 한다. 비난하는 사람과 똑같이 비난을 해댄다면 흉내쟁이나 따라쟁이가 될 수밖에 없고 결국 둘 다 잘못했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선거는 물론이고 겨룸과 경쟁이 있는 경우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하게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와 치열한 경쟁을 하고있는 사람이 나를 칭찬하고 다니는데 나는 그를 헐뜯고 다니다가 갑자기 외진 골목에서 그 사람을 만나게 되면 밝은 얼굴로 인사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어떤 느낌이 들까요? 상대를 모질게 씹다 버린 껌 같은 말들, 그대로 내버려 두면 누가 치워야 하는가? 반려견들이 공원 산.. 2023. 10. 19.
또 다른 나의 모습인 친구 벗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이다. 마테오리치는 벗을 '나의 반쪽'이며, '제2의 나'라 하였다. 연암 박지원은 '피를 나누지 않은 형제'라고 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내 편이 되어 주는 단 한 명의 진실한 벗만 있어도 인생을 아름답게 살고 있다 할 것이다. 또 그런 벗이 있다면 이 험난한 세상을 함께 헤쳐나갈 지혜와 힘을 얻을 수 있고 마음 또한 든든할 것이다. ‘벗을 삼다’, ‘벗하다’, ‘벗을 트다’는 말들은 만남에서 서로 허물없이 친하게 사귄다는 뜻일 게다. 한자인 우(友)는 왼손을 나타내는 수(手)자와 오른손을 나타내는 우(又)자를 어우른 글자로, 손을 마주 잡고 서로 도우며 더불어 친하게 지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벗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말로는 친구, 동무, 우인(友人), 붕우(朋友).. 2023. 10. 12.
그들은 왜 친하게 지낼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너는 좋아하지 않고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내가 싫어할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네가 좋아하는 것이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다. 싫어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지 마라 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하라고 강요한다면 어찌 될까? 이해(理解)와 존중(尊重)과 화목(和睦) 보다는 비난과 다툼과 헤어짐이 발생하지 않을까? 공자(孔子)는 일찍이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하게 해서는 안 된다‘(논어, 위령공편) 라고 강조한 바 있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도 마땅히 하기 싫어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굽실거리고 싶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 2023. 10. 5.
쭉정이는 바람을 무서워한다? 가을 들녘에는 농부들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란 알곡들이 예쁜 모습으로 쌓여만 간다. 바람이 불면 쓰러질까 가뭄이 들면 말라 죽을까 장맛비에 녹아 내릴까 애간장을 태운 그 수많은 시간들이 여문다. 새봄에 똑똑한 씨를 골라 뿌리고 늦가을에 거두어들이기까지 다정한 눈길 주면서 수만 번의 걸음걸이로 논두렁에 큰길을 낸다. 꽃밭 속의 꽃길에는 향기가 나고 잘 익은 낟알에는 농부의 땀 냄새가 스민다. 가을 하늘이 보고 싶은 누님의 얼굴을 닮아갈 때면 곱게 익어가는 가을 햇살이 넉넉한 농부의 마음도 함께 거둔다. 아름다운 꽃 탐스런 과일이 매달린 곳에는 반드시 길이 생긴다.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바지랑대로 하늘 재기 한다고 주장하면서 잘 익은 감을 살짝살짝 따간다. 은근슬쩍 훑어가고 꺾어가고 캐가는 못된 손찌검.. 2023. 9. 21.
썩은 나무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말을 해보면 어떨까? 필자는 중학교에 들어가 ‘노래 부르기’ 실기 시험을 치고 나서야 지독한 음치라는 사실을 알았다. 음정과 박자를 도통 무시하고 마치 내가 작곡가 인양 내 감정에 충실하면서 내 맘대로 부르고 있던 것이다. 그때 선생님께서 ‘너 같은 음치는 정말 처음 본다.’라고 핀잔을 주셨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는 말씀도 없었다. 얼굴이 붉어지고 속이 상했지만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그 이후로 저는 음치라는 생각에 노래 부르는 것을 잊고 살았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누가 노래를 부르라 하면 무척 곤혹스러웠다. 때로는 저를 모욕 주거나 능멸하기 위해 노래를 시킨다고 오해 아닌 오해를 하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못 한다고 피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과 좀 더 가깝게 어울리기 위해서라도 노래를 불러야겠기에 마음을.. 2023.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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