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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마당/염홍철의 아침단상61

내리사랑과 치사랑 혈육이 아닌 사람으로서 부부만큼 오랫동안 사랑으로 결합한 관계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부의 사랑도 단계별로 변화를 겪지요. 젊었을 때는 불꽃 같은 열정이 있고, 나이가 들면 열정의 자리가 꾸준한 친밀감과 함께 만들어 내는 일들로 메워집니다. 그러니까 불꽃 같은 열정이 약해진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깊고 은은하게 지펴지는 화로 속의 빨간 숯불이 대신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친밀감이 노년에 와서는 헌신으로 변하지요. 언젠가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조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동생을 먼저 떠나보내고 상가 구석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친구의 큰아버지는 “내가 암으로 고생할 때 자식이나 며느리는 다 필요 없더라. 내 아내만이 열과 성을 다해 나를 돌보더라.”라고 독백하시.. 2023. 11. 7.
늦은 후회 명사들이 쓴 유언을 모아 책으로 낸 것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대체로 이분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아름답고 살만하다고 쓰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30대와 40대는 증발해버리고 20대에서 50대로 그냥 건너뛰었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잠자는 시간보다 깨어있는 시간이 많았으므로 충분한 인생을 살아 만족했다고 회고했습니다. 현시점에서 저의 삶을 뒤돌아보면 보람과 후회가 교차합니다. 보람은 비교적 순탄하게 직장생활을 했고, 건강하며, 많은 친구를 가진 것입니다. 반면 후회스러운 일은 학생 때 그 흔한 당구 한 번 쳐보지 못했고, 교수 시절에는 테니스 라켓 한 번 잡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고 피아노를 멋지게 연주하고 싶습니다. 얼마든지 시간을 내어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인고의 시.. 2023. 10. 31.
늦장 부리는 사람들 인간은 누구나 완벽하지 못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매 순간을 성실하고 지혜롭게 임해야 한다는 것을 다짐하는데도 허투루 낭비하는 모순에 빠지게 되지요. 자신도 모르게 낭비하는 것은 많이 있을 것이나 ‘늦장’도 그중 하나입니다. 기원전 4,000년 이집트인들이 사용한 상형문자에도 늦장을 나타내는 단어가 최소한 여덟 개였던 것으로 알려졌고, 기원전 700년경에 활동한 헤시오도스는 이라는 시에서 늦장 부리는 사람이 일을 망친다고 한탄하였습니다. 엘리샤 그레이라는 사람은 벨보다 전화를 먼저 발명하고도 특허 등록을 미루다 역사적인 전화 발명의 명예를 벨에게 안겨주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중요도와 관계없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는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늦장이라는 문제에 직면해왔습니다. 늦장을 연구한 피어스 스틸은 .. 2023. 10. 24.
세상만사가 역설인 시대 ‘역설(逆說, Paradox)’이란 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역설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역설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주의나 주장에 반대되는 이론’, 또는 ‘겉으로는 모순되고 불합리하여 진리에 반대하고 있는 듯 하나 실질적인 내용은 진리의 말’이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역설 중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를 비유한 ‘제논의 역설’이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도 수많은 역설이 산재해있습니다. 최근 투표의 등가성과 정당정치의 활성화를 위해 국회의원 선거구를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조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투표의 역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는 프랑스의 정치가이며 수학자인 콩도르세의 이론이기도 한데 민주주의.. 2023. 10. 17.
언제까지 숨 막히는 속도를 쫓아가며 살아야 할까? 살면서 순간순간 사라져 간 것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발소’라고 쓰인 촌스러운 간판, 큰 길가의 공중전화 부스, 달걀 노른자위 띄운 모닝커피, 신작로에 늘어선 전봇대, 우표가 붙은 손 편지, 퇴근길 아버지를 반갑게 맞아주던 딸들, 타자기, 삐삐 등 지금의 유행에는 맞지 않지만 적어도 그 시절에는 만족해하던 모습들입니다. 전화번호를 기억하는 옛날의 습성은 사라져 버린 지 오랩니다. 뇌 기능의 대부분은 휴대전화나 컴퓨터가 대신해줍니다. 회식 자리에 가면 아이나 어른이나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마치 그 속에 더 엄청난 것이 들어있다는 듯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 아주 씁쓸하지만, 그러나 자신도 거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기만 나가도 모.. 2023. 10. 10.
부모가 아이를 망친다 젊은 세대의 가치관 변화에 따라 가정에서 부부의 역할이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가사와 육아는 부인이 전담하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이제는 부부가 가사를 함께 돌보는 것은 물론이고 자녀의 양육을 분담하고, 대부분의 사교 모임이나 활동에 부부가 동반하여 참여합니다. 부부가 함께 운동도 하고, 술도 같이 마시며, 주말은 으레 가족이 함께 즐기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바람직한 변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정에서 남편이 아내를 존중하고 아이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습관은 민주성, 배려, 진정성, 공정성 등의 가치가 체화되는 것이고 나아가 사회로까지 확산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그래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이라는 긍정적인 요소를 뛰어넘는 교육적 효과까지 기대할.. 2023. 9. 26.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라는 공포 업무에 얽매이지 않으니까 일상에서 여유가 생깁니다. 이런 시기엔 삶의 속도를 한 템포 늦추면서 그동안 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되새겨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달리는 동안’이 아닌 ‘쉬는 동안’이기 때문이지요. 삶을 대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세가 각자의 운명을 만든다고 합니다.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는 길일 수도 있고 선택이 모여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지만, 솔직히 무엇이 진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정해져 있는 길’과 ‘선택이 모여 이룬 결과’가 결합 되어 있지 않을까요? 섭리와 자유의지의 결합을 의미하지요. 현대를 사는 대부분 사람은 실제의 어려움보다는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라는 공포로 스스로 불행을 자초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 2023. 9. 19.
사치와 과소비에 익숙한 사람들 각종 경제 지표를 보거나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경제가 몹시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주변에서 사치와 과소비를 여전히 목격하게 됩니다. 부도 직전에 있는 기업인들도 주말에는 골프장에 나가고 해외여행도 자주 갑니다. 물론 일부이긴 하지만 고급 음식점에 가보면 여전히 예약이 밀려있고 손님들이 넘쳐납니다. 미국에 잠시 있을 때 대학에서 교수들은 점심시간에 대부분 주로 값싼 샌드위치나 햄버거를 점심으로 먹지요. 당시 제가 있던 대학의 교수, 그분은 우리나라로는 대학원장 급입니다. 한국에서 어느 정치인이 오셔서 일본 전문가인 그분과 저녁 식사를 하고 싶다고 요청하여, 그 교수께 부탁했더니 흔쾌히 응해주셨습니다. 식사 장소는 한국에서 오신 손님이 머무는 호텔의 식당이었는데, 그 식당으로 이.. 2023. 9. 12.
'하늘’에도 속해있고 ‘땅’에도 발을 디디고 있다 인간은 신(神)적인 위대함이 있는 반면에 광기와 잔인함도 공존한다는 사실은 대부분 사람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인간 본성에 관한 연구도 두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지요. 그런데 학술적 분석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으로 이것을 입증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탈리아 문학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인 프리모 레비(Primo Levi)인데 그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반파시즘 저항 운동에 참여하다가 아우슈비츠로 이송당했으나, 기적적으로 생환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경험과 사유를 바탕으로 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의 핵심은 인간은 단순히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라는 이원론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에 이 모든 것들이 혼재되어 있다는 자각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프.. 2023. 9. 5.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오늘은 ‘사랑을 돈으로 살 수 있는가?’라는 주제입니다. 의 저자로 유명한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10년 전쯤 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화제를 일으킨 바 있습니다. 샌델 교수가 제기하고 있는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돈으로 거래돼서는 안 되는 것들이 돈으로 거래되고 있는 사례를 치밀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그가 지적한 사례로는 크게는 가족, 교육, 환경 등 전통적인 가치와 시민참여, 공공성, 우정과 사랑, 명예 등 인간 사회의 기본적인 덕목까지를 거의 망라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사랑이 들어있는 것이지요. 이 책의 한국어판 감수와 해제를 맡은 숭실대 김선욱 교수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없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우리 사회도 이제쯤은 “하면.. 2023.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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